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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종이의 발명자는 채륜이 아니다?…종이를 둘러싼 흥미진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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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종이의 발명자는 중국 후한 때 환관인 채륜(50~121)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상식과는 달리 고고학자들은 고분에서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된 종이들을 발견했다. 그중 몇몇은 기원전 2세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인체에 해로운 것으로 알려진 석면은 긴 섬유만 뽑아내면 인체에 아무런 해를 주지 않아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석면으로 만든 종이는 불에 매우 강해 화재를 두려워하는 공증인이나 기록보관자들의 애용품이다.

‘종이가 만든 길(작은씨앗)’은 오랜 세월 중국 대륙 안에 머물러 있던 종이가 어떻게 아랍을 거쳐 유럽, 더 나아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갈 수 있었는지 흥미롭게 서술한다. 저자인 에릭 오르세나는 세계 5대륙 6도시를 다니며 ‘목화’를 주제로 세계화의 규칙과 이면을 풀어낸 ‘코튼로드’로 세계적인 호평을 받은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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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중국의 우름키에서 시작해 이탈리아의 파브리아노, 일본의 에치젠, 인도의 볼리우드, 캐나다의 트루아리비에르, 스웨덴의 예블레,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브라질의 아라크루즈로 이어지는 5대륙 15여 국의 대장정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종이와 관련된 전문가들과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인물들을 만나 종이의 전파 과정의 정치적ㆍ사회적 배경과 맥락을 명확히 짚어나간다. 이를 통해 저자는 중국에 머물러 있던 종이가 8세기께 아랍으로 전파된 이유가 전쟁과 정직성 때문이고, 아랍에서 유럽으로 전파되기까지 500여 년이나 소요된 이유가 유럽인들이 종이를 이교도들의 불경한 물건으로 간주했기 때문임을 밝힌다.

“사마르칸트를 정복함으로써 아랍인들은 중국의 장인들이 그곳에서 제작하던 경이로운 소재인 종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후로 아랍인들은 더 이상 종이가 아닌 다른 곳에 글을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 762년에 압바스 왕조는 바그다드를 자신들의 수도로 정했다. 압바스 왕조는 종이를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단지 종이가 우수했기 때문이 아니라 종이가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종이는 사용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직할 것을 요구했다. 그때까지 사용하던 다른 소재는 그 뒷면을 손상시키지 않고도 잘못 쓴 글자를 긁어낼 수 있었다. 이름이나 숫자, 심지어 서명까지 그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고칠 수 있었던 것이다. 틀린 것을 이렇게 쉽게 고칠 수 있다는 사실은 광활한 제국을 통치하는 사람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왕조는 자신들이 발송하거나 전달한 문서에 신뢰를 담을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아랍의 시대’ 중)

이밖에도 저자는 박테리아를 제거할 수 있는 바이러스를 종이 속에 영원히 고정시키는 기술, 전자출판, 종이를 위한 위생과 온도와 관련된 최신 기술 등을 소개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와 루이 파스퇴르 등의 세계적인 문학가 및 과학자에게 생명과도 같은 존재였던 그들의 원고를 둘러싼 이야기, 프랑스 ‘위조지폐 제조왕’ 보자르스키의 이야기 등도 읽을거리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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