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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한기호의 책통]인문학 르네상스 이후 '대중의 과학화'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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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한 지방대학 구내서점의 서가에 ‘인문학’이란 단어가 들어간 책이 20여 권 나란히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두 번 놀랐다. 이런 대단한 열풍에 놀랐고, 너무 문사철 중심이라는 것에 놀랐다. 물론 ‘인문학은 밥이다’(김경집, RHK)처럼 과학과 음악, 환경 등을 인문학에 포함시킨 책이 있어 다행이긴 했지만 말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일찍이 ‘인문학의 가능성’(‘논좌’ 2007년 3월)이란 글에서 “인문학은 어떤 가능성을 가질까라는 물음”은 “정보로 바꿀 수 없는 지식의 가능성을 묻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은 이어진다. “이런 문제는 컴퓨터와 테크놀로지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의 문제다. 장사꾼은 싸게 사들이고 비싸게 팔아 차액을 챙긴다. 산업자본주의도 ‘차이’에서 이윤을 얻음으로써 증식한다는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 차이가 점차 사라지고 이윤율도 낮아진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늘 차이를 만들고 새로운 차이를 찾아내려고 한다. 선진국에서 포화상태가 되면 도상국에서 차이를 찾는다. 대충 이렇게 국제화가 이뤄진다.”

그 결과 전 세계 주요 도시의 시민은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다. 여전히 첨단기술은 이공계나 의학계에서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세분화가 이뤄지고 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새로운 상품이 출현하는 시대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나 교양의 수준이 타자와의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한때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탈구축, 문화연구 등의 인문과학이 빛나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인간의 정신과 문화에 대한 연구는 인지과학과 뇌 과학, 정보과학에 인식론적 주도권을 빼앗겨버렸다. 그런데도 우리 인문학은 문학, 역사, 철학만을 중시하던 조선시대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은 한 인터뷰에서 "유럽의 초기 대학의 일반교양, 즉 ‘리버럴 아트’는 수사학, 문법, 논리학, 음악, 산수, 기하학, 천문학 등 7과목이었다. 당시 음악은 우주의 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이었는데, 절반 이상이 과학과 연관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과학을 빼버렸다”고 지적하며 ‘과학의 대중화’가 아닌 ‘대중의 과학화’가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지난해에는 ‘어메이징 그래비티’(조진호, 궁리) ‘서민의 기생충열전’(을유문화사),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황선도, 부키),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장대익, 바다), ‘온도계의 철학’(장하석, 동아시아), ‘빅 히스토리’ 시리즈(이명현 외, 와이스쿨) 등 국내 저자가 쓴 수준 높은 교양서들이 출간됐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획기적인 변화가 시급하다. 올해는 정말 좋은 과학서가 많이 출간되어 누구나 가치의 원근감을 갖고 자율적인 판단을 내릴 줄 아는 능력을 갖출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애타게 기원한다.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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