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진도 여객선 침몰 / 무능·무책임 정부] 과도한 '1人 리더십' 벗어나 위기관리 시스템 복원해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대통령이 일일이 챙기면 관료조직 안움직이는 부작용… 범정부적인 협업 시스템 필요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가 침몰한 전남 진도를 지난 17일 찾아 구조 활동을 독려하고 실종자 가족들을 만났다. 이에 대해 "가족들을 위로하고 현장 관계자들에게 긴장감을 줬다는 점에서 잘한 일"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박 대통령이 자꾸 만기친람(萬機親覽·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핌)을 하게 되면 결국 시스템이 움직이지 않게 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만기친람 이전에 국정이 시스템에 의해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얘기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대형 사고 초기 단계에서부터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요구 사항을 듣고, 정부 당국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등 현장 지휘에 직접 나선 경우는 드물었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18일 기자와 통화에서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할 일이 있는 것이고, 다른 정부 관리들은 그들대로 할 일이 있는 것인데 이번 방문으로 대통령이 너무 위에서 아래까지 관여한다는 인상을 줬다"며 "이렇게 되면 시스템이 움직이지 않고 (공무원들은) 자꾸 위만 쳐다보게 된다"고 했다. 전윤철 전 감사원장은 "박 대통령이 이번에 현장을 찾은 것은 잘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대통령이 말을 안 할 경우 관료 조직은 안 움직이게 되고, 중대사가 터질 때마다 일일이 대통령이 나서서 살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는 "현장에서 당연히 해결되어야 할 일들이 대통령의 한마디에 정치적으로 해결되는 장면은 보기가 안 좋다"며 "범정부적인 협업 시스템이 개발되고 그것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박 대통령이 세세한 현안을 일일이 챙기고 현장을 찾는 모습을 보여주기 이전에 국정이 시스템에 따라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박 대통령이 현장을 찾아서 했던 '관련자 엄벌'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모두 물러나야' 등의 발언은 이후 정치적으로 여러 해석을 낳을 수 있고, 자칫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만큼 신중하게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계 원로(元老)들과 전문가들 다수는 "박 대통령이 현장을 찾은 것 자체는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시스템으로 국정이 돌아간다면 좋겠지만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국민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여기고, 당국자들을 비판하고 호통치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고 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정무수석을 지낸 이원종 한양대 특임교수는 "우리 국민은 '흉년이나 물난리가 나면 왕에게 덕(德)이 없기 때문'이라는 정서를 물려받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 지도자처럼 시스템에 맡기고 팔짱 끼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 "대통령의 현장 방문은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것이지 만기친람이란 차원에서 볼 일은 아니다"고 했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도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은 국가적 대사(大事)에서 국민과 공감대를 갖고 있음을 보여줘야 하고 그것이 리더십의 원천"이라며 "당연히 이런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야당에서도 박 대통령의 현장 방문에 대한 반응이 엇갈려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 박혜자 최고위원은 이날 당 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직접 내려가 구조를 약속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신경민 최고위원은 트위터에서 "구호에 걸림돌이 돼선 안 되기 때문에 국가원수가 현장에 가는 결정은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이동훈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