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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먹방, 공방, 겜방… 아프리카TV는 10·20대 소통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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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방송 매개로 또래들과 대화하며 관계 맺어… 웃기고 재미있는 중독성에 그들의 ‘문화권력’으로 부상

일요일 늦은 오후, 저녁을 먹은 지영이(가명)네 가족들이 거실로 모인다. 리모컨을 쥔 아버지가 텔레비전을 켠다. 주인공은 몰랐던 출생의 비밀, ‘내 눈에 흙이 들어가더라도 너희 둘의 결혼은 안돼’라며 결혼을 반대하는 가족들, 조강지처를 버리고 바람을 피우는 남편과 복수를 결심하는 아내…. 어떤 채널을 켜도 비슷한 이야기구조의 드라마들이 텔레비전을 채우고 있다. 15살 지영이는 자신의 생활과는 상관도 없고 뻔한 내용의 드라마들이 지루하기만 하다. “맨날 똑같은 내용인데… 딴 데 보면 안돼?” 엄마가 말한다. “안돼, 요즘 이게 제일 인기 있어.”

■ ‘먹방’ 보다가 “어디 치킨이에요?”

텔레비전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은 부모님을 뒤로하고 지영이는 방으로 들어온다. 지영이는 컴퓨터를 켜고 앉아 자신만의 TV를 켠다. 검색창에 ‘아프리카TV’를 검색해 접속한다. 사이트에 들어가니 생방송이 진행 중인 5000여개의 채널이 있다. 각 채널은 자신만의 방에서 캠코더를 켜놓고 1인 라디오 DJ처럼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BJ(방송 진행자)들이 만든 것이다.

지영이가 ‘먹방’(먹는 방송)으로 검색해 자주 보는 BJ의 채널에 들어가자 BJ가 컴퓨터 앞에서 모니터를 보면서 양념치킨을 먹고 있다. “BJ님 안녕하세요. 지금 먹는 치킨 무슨 치킨이에요?”라고 채팅창에 치자 채팅창을 읽은 BJ가 바로 답을 해준다. “지금 집 앞에 있는 **치킨 시켜서 먹고 있어요.” “그렇구나, ㄱㅅㄱㅅ(감사합니다).”

채팅창에는 지영이와 같이 방송을 보는 다른 이용자들이 모여서 채팅을 하면서 방송을 보고 있다. 거실에 있는 부모님이 말 없이 TV를 보는 동안, 지영이는 수천명의 사람과 함께 대화하며 아프리카TV를 본다.

경향신문

■ 기존 방송과 다른 자유분방한 주제에 매료

40~60대의 중년과 노년층에게 텔레비전은 가장 친숙한 오락 매체다. 텔레비전은 인터넷도 없고 영화도 흔하지 않던 시절에 유년기를 거친 이들에게는 유일한 영상 오락거리가 돼줬다. 이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텔레비전을 본다. 얼마 전 종영한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의 마지막회 시청자는 40~60대가 63%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반면 10·20대들은 부모 세대가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자신들에게 가장 익숙한 매체인 인터넷으로 텔레비전을 본다.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읽고 쓰고 말하며 매우 ‘역동적’으로 시청을 한다. 방송 진행자, 시청자와 쉴 새 없이 채팅을 주고받고, 몇 천 개의 채널 중 자신이 관심 있는 방을 선택해 시청한다.

10·20대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아프리카TV는 2006년 시작된 ‘개인용 방송’ 사이트다. PC용 캠코더 한 대와 컴퓨터만 있으면 누구나 방송을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게임, 먹방, 스포츠 등 다양한 주제로 자신만의 방송 채널을 만들고, 사이트에 접속한 사람들이 검색을 통해 채널에 들어와 방송을 시청한다. 아프리카TV의 주 시청층은 10·20대로, 이들은 전체 시청층의 60%를 차지한다. 방송은 무료다.

아프리카TV의 방송 주제는 자유분방하고 다양하다. 모바일게임부터 공포게임, 격투게임까지 BJ가 다양한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겜방’(게임방송), 떡볶이, 치킨 등 먹는 것을 보여주는 ‘먹방’(먹는 방송), 스포츠 중계를 하는 ‘스포츠 방송’, 특별한 주제 없이 시청자들과 하루 일과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송들이 주를 이룬다. 아프리카TV 홍보팀 안세림 과장은 “겜방이 50% 이상이고 스포츠 방송, 먹방, 라디오와 같이 이야기를 하는 방송 순으로 개설된다”고 말했다.

방송은 대부분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한 예능적 재미와 자유로운 형식을 갖추고 있다. 우선 리얼함 면에서 텔레비전의 리얼버라이어티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몇몇 BJ들은 특별한 주제 없이 신기하고 재밌어 보이는 일들을 몸소 수행한다. 매운 라면 소스를 한꺼번에 30개씩 먹거나 이동식 캠코더를 들고 흉가체험을 떠나는 등 리얼함의 정점을 찍는 방송들이 많다. 아무 말 없이 공부하는 모습만 보여주는 ‘공부방송’, 말 없이 조용히 앉아만 있는 ‘침묵방송’, 술 한잔 마시면서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술방송’ 등 다양한 콘셉트의 방송이 있다.

채팅을 통해 의견을 주고받으며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은 방송이 재밌다 싶으면 한 개에 100원인 ‘별풍선’을 구매해 BJ에게 선물하고, BJ는 별풍선을 선물한 사람을 위해 감사인사나 퍼포먼스로 화답한다. 이렇게 매일 350만명가량의 이용자가 아프리카TV를 이용하고 있다. 시청자가 가장 많은 시간인 오후 8시부터 밤 12시 사이에 이용자수는 3년 전인 2011년(약 26만명)에 비해 1.6배가량 늘었다. 피크 시간대에는 약 6500개의 방이 개설되고, 38만명이 동시에 접속해서 텔레비전을 본다. 10·20대가 60%를 차지한다고 하니 동시에 23만명가량의 10·20대가 아프리카TV를 시청하는 셈이다.

■ 10대에겐 TV 시청 아닌 ‘놀이’이자 ‘사교’

10·20대는 왜 일반 TV 대신 아프리카TV를 시청하는 것인가. 10대들은 아프리카TV 방송을 매개로 대화를 나누며 또래와 소통한다. 시청이 아닌 일종의 ‘놀이’이며 ‘사교’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아프리카TV를 통해 다른 이들의 생활을 배우고, 친구를 만들고, 자기 자신을 표현한다. 게임방송으로 유명 BJ 반열에 오른 BJ 보드(19·남)는 다른 BJ들의 게임방송을 보다가 ‘나도 이 게임 잘하는데, 방송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에 방송을 시작했다고 한다. BJ 보드는 “방송을 하면서 시청자들과 같이 소통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에 아이들 중에 아프리카TV를 즐겨보는 사람이 많고, 이를 소재로 대화를 한다”고 말했다. 그는 “TV가 아닌 아프리카TV를 통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찾고, 이를 주제로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일상적인 문화이며 생활”이라고 덧붙였다.

성적이 우수한 고등학교 1학년 윤모양(15)에게도 아프리카TV는 친숙하다. 텔레비전 방송처럼 거창하거나 무겁게 느껴지지 않고 재밌게 가지고 노는 대상처럼 느껴진다. 아프리카TV에는 최신 유행하는 노래를 틀면서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서 뚜렷한 주제 없이 소위 ‘농담 따먹기’식의 대화만을 이어가는 BJ들이 많은데 윤양은 이런 방송들을 좋아한다. 윤양은 “그냥 방송에서 말하는 게 웃기고, 맛있는 거 먹고 그러는 게 재밌어서 본다”며 “반에서 아이들끼리 노는 모습을 찍어서 방송하는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이 잘 갖춰진 환경에서 자라온 아이들에게 친구를 사귀는 데 가상현실과 현실의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건국대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아프리카TV를 주로 이용하는 10대들은 인터넷 소통이 현실 소통의 대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 세대는 직접 얼굴을 보거나 목소리를 듣는 식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것과 인터넷으로 채팅을 하면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을 다르다고 생각하고, 후자가 좀 더 느슨한 형태의 인간관계라고 생각하지만 요즘 10대들은 둘 다 같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가족 내 대화 욕구 해결 못해 일어난 현상

가족구조의 변화와 놀이문화가 부재한 학습환경은 10대들이 사교 수단으로 아프리카TV를 택하도록 유도했다. 핵가족화가 진행되고 가족마다 자녀수가 적어지면서 아이들이 어울려 놀 수 있는 가족 구성원은 줄어들었다. 경쟁 위주의 학습환경은 아이들이 나가서 다른 친구들과 부대끼면서 뛰어노는 문화들이 자연스레 사라지도록 했다.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배영 교수는 “환경이 변했어도 사람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욕구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라며 “가족 내에서 커뮤니케이션 욕구를 해결하지 못한 아이들이 온라인을 통해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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