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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뜨거운 불길도, 장애등급제도 없는 하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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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활동지원 못받은 송씨 끝내 숨져

폐부종 등 화상 고통 4일만에

“사고전 옷·신발 사고 좋아했는데

마지막길 준비였나” 지인 울먹

‘등급제 폐지 요구’ 목소리 커져


장애인 임시거주 시설에서 일어난 화재로 중태에 빠졌던 송국현(53)씨가 17일 끝내 숨졌다.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데도 장애등급 재심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탓에 참변을 당하고 만 송씨의 사례는 장애인 복지제도의 맹점을 다시금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한겨레> 4월14일치 1면 참조)

서울 대치동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송씨는 전날 밤 10시께부터 열이 42도까지 오르고 폐부종이 심해지다 이날 아침 6시40분께 숨이 멎었다. 의식을 잃기 전까지 송씨는 찾아온 지인들에게 화상의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삶의 의지’를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매달 3만원씩 나오는 장애수당을 두고 “용돈이 부족해서 큰일”이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송씨는 언어장애가 있어 간단한 대화도 어려운 탓에 그를 오래 도와온 장애인 활동가들이 의사소통을 도와왔다. 화재 당시에도 송씨는 ‘불이야’라는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송씨를 형으로 부를 만큼 가까이 지낸 정동은 서울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이틀 전만 해도 어느 정도 의사 표현이 가능했다. 사고 직전 새 옷과 신발을 사고 그렇게 즐거워했는데, 그게 어쩌면 마지막 가는 길을 준비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먹먹하다”며 울먹였다.

앞서 송씨는 지난 13일 오전 서울 성동구에 있는 임시 거주지인 장애인 자립생활 체험홈의 침대 위에서 전신 3도 화상을 입은 채 소방관들에게 발견됐다. 거실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이 방으로 번졌지만 오른쪽 팔과 다리를 못 쓰는 송씨가 불길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언어장애 3급, 뇌병변장애 5급의 중복 장애인인 송씨는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장애등급 1·2급까지만 신청할 수 있는 ‘장애인 활동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장애등급이 기준에 미달한다는 이유에서다.

장애인단체와 정치권 등은 송씨의 죽음을 “현행 장애등급제가 낳은 비극”이라고 규정하고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했다. 남병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은 “가슴이 미어진다. 장애등급제가 아니라 개별 장애인의 필요에 따라 활동지원 등 복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정의당은 “명복을 빈다. 장애인 활동보조를 심사하는 현행 제도를 즉각 폐지해야 한다”고 논평했다. 녹색당도 “장애등급제가 또 사람을 죽였다”고 비판했다.

20년 넘는 세월을 홀로 지내와 무연고자로 알려진 송씨였지만, 경찰에서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 형과 누나 등 가족들이 빈소가 차려진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가족들은 송씨가 5남매 중 막내라고 했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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