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정부가 ‘MS 윈도 마케팅팀’인가?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한겨레] [김재섭 기자의 뒤집어보기] 윈도XP 보안 지원 종료

MS, 보안 업데이트 중단 방침에

금감원 등 나서 업그레이드 주문

국가정보화, 다국적기업에 종속

10년마다 국민 세금 MS 주머니로


‘윈도엑스피(XP) 업그레이드’ 호들갑이 이어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보안 지원을 종료한 윈도엑스피를 서둘러 최신 운영체제로 업그레이드하라는 것이다. 최근에도 서울시 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정보화 기기 예산을 조기 집행해 윈도엑스피를 업그레이드하거나 피시를 통째로 교체하라고 긴급 지시했고, 금융감독원 역시 은행들한테 윈도엑스피를 2017년까지 업그레이드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앞서 엠에스는 지난 8일 윈도엑스피에 대한 보안 지원을 종료했다. 윈도엑스피에서 보안 취약점이 발견돼도 더는 이를 때울 패치 프로그램을 내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엠에스는 윈도엑스피를 윈도8.1로 업그레이드해 보안 위협에 대비하라고 권한다. 물론 윈도8.1 일반 사용자용은 17만원, 전문가용은 31만원을 내야 한다. 정부기관을 대상으로 일단 업그레이드한 뒤 비용은 내년 예산으로 내게 하는 ‘외상’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윈도엑스피에 대한 보안 지원 종료는, 이 운영체제 출시 때부터 이미 예정돼 있었다. 엠에스가 윈도에 대한 보안 지원 기간을 10년으로 못박아놨다. 4월8일부터 보안 지원을 종료한다는 것 역시 꽤 오래전에 공지됐다. 그런데 그동안 뭐하다 이제 와서 난리를 치는 것일까. 더욱이 2007년에도 같은 경험을 했다. 당시는 엠에스가 윈도98에 대한 보안 지원을 종료할 테니 서둘러 윈도비스타로 업그레이드하라고 해 부산을 떨었다.

처음은 ‘실수’로 봐줄 수 있다. 하지만 두번째는 아니다. 머리가 나쁘거나 게으르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아니라면 윈도엑스피를 계속 사용해도 보안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한 사실과 근거를 당당히 밝혀야 한다. 사실 은행들의 경우엔 이렇게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보안 지원이 종료된 프로그램을 계속 사용하다 전산망이 뚫려 고객 돈이 사라지기라도 하면 은행이 망할 수도 있는데, 새 운영체제 값 몇푼을 아끼겠다고 대응을 미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학교에서 사용중인 교육용 피시를 두고는, 교육용이라 보안 취약점이 있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만약 은행이 괜찮다는 판단도 없이 윈도엑스피에 대한 보안 지원 종료 이후까지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면, 그 은행은 이미 엄청난 보안 구멍을 안고 있는 셈이다. 허술한 보안 의식만큼 큰 구멍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 규제기관들이 ‘윈도엑스피 업그레이드’를 종용한 것은 문제가 많다. 우선 땜질식 처방을 강요한 셈이고, 그 과정에서 의도 여부와 상관없이 ‘엠에스 윈도 마케팅 지원팀’ 구실을 했다. 윈도엑스피를 서둘러 업그레이드하라는 말은 최신 윈도 운영체제로 바꾸라는 것과 다름없다. 또한 은행이나 학교 등 실제 사용자가 윈도엑스피를 최신 윈도 운영체제가 아닌, 리눅스 등 상대적으로 보안 위협 대처 능력이 큰 것으로 대체해볼 수 있는 길을 막아, 몇년 뒤 이번과 같은 사태가 또 벌어지게 만들었다. 엠에스 방침대로라면, 현재 사용되는 윈도 가운데 윈도비스타는 2017년, 윈도7은 2019년, 윈도8은 2022년, 윈도8.1은 2023년에 보안 지원이 종료된다.

이런 상황이 국가정보화를 엠에스라는 미국의 특정 다국적 기업에 종속된 상태로 추진해 발생하는 부작용이란 인식도 부족하다. 이런 공무원들이 있는 한, 윈도 사용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엠에스한테 소비자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국민이 낸 세금이 엠에스 주머니로 낭비될 수밖에 없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공식 SNS [통하니] [트위터] [미투데이] | 구독신청 [한겨레신문] [한겨레21]

한겨레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