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 <413>
북한이탈주민의 북한식 억양은 능히 극복하지 못할 문제는 아니다. 나이나 개인의 차이는 있되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동화된다. 북한식 표현 역시 시간이 흐르면 한국의 언어생활에 적응되기는 하나 억양의 동화보다는 일반적으로 느리다.
‘~었다’로 맺어야 할 글이 ‘~였다’로 끝난다. ‘~할 데 대하여’라는 표현이 수시로 등장한다. ‘다섯 빼기 둘은 삼’을 ‘다섯 덜기 둘 같기는 삼’이라고 한다. 북한말들이다.
가두배추(양배추), 가마치(누룽지), 간참(참견·간섭), 견결하다(꿋꿋하고 굳세다), 고려의학(한의학), 교양원(유치원 교사), 구춘하다(출출하다), 날자(날짜), 눅거리(싸구려), 마사지다(부서지다), 몸까기(다이어트·감량), 배워주다(가르쳐주다), 부루(상추), 유보도(산책로), 중세소업(중소기업), 창경(물안경·수경), 행표(수표), 현수(턱걸이), ‘떠내려갈가 봐’(떠내려갈까봐), 일군(일꾼), 사느라면(사노라면), 부화(바람·불륜)….
사이시옷은 지뢰다. 북에서는 맞춤법에 사이시옷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다만 ‘샛별-새별(새로운 별)’, ‘빗바람(비가 오면서 부는 바람-비바람·비와 바람) 등 의미와 혼동을 피하려고 몇 개 단어만 예외로 두고 있다. 두음법칙도 마찬가지다. 북은 두음법칙을 인정하지 않는다.
10년이 돼도 고치기 어려워 가장 많이 틀리는 것은 모음 표기다. ‘하여’, ‘하였다’ 외에는 공통점이 없다시피 하다. 북에서는 ‘기여가다, 개여, 되였다’고 쓴다.
북한의 문장부호는 17가지, 부호는 19개다. 한국은 각 19, 25개다. 남북의 부호와 이름이 일치하는 것은 ‘반점(,), 물음표(?), 느낌표(!), 물결표(~), 4개에 불과하다. 그래도 이건 좀 낫다. 이 중 인용부호만 기억하면 일상생활에 큰 문제는 없다. 북의 인용표(《》) 대신 한국에서는 큰따옴표(“”), 거듭인용표(<>)를 대신해 작은따옴표(‘’)를 쓴다.
‘대한민국 정착을 위한 북한이탈주민 남북 필수용어집’이라는 수첩이 있다. 남북한말 비교 600여개, 외래어 1000여개 등 단어 1600여개와 문법 등을 북한이탈주민들이 직접 선별했다. 통일부 산하 비영리 민간단체인 ‘통일시대사람들’ 김지우 대표는 “우리나라 방송 등에서 소개되는 남북한 말 비교는 얼마나 정확할까”라고 묻는다. “북한이탈주민들이 보기에는 70% 이상이 너무나 터무니 없는 경우다. 북한 지방의 사투리를 북한 표준어라면서 남북한말 차이라고 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지적한다.
다행히 남과 북의 의사소통이 어려울 지경은 아니다. “한국말과 북한말의 차이가 기존에 한국사회에 많이 알려진 것보다는 훨씬 적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안도할 수준이다. 그러나 “북한이탈주민에 있어 남북한 고유언어의 차이보다는 한국에 무수히 난무하는 영어에 기초한 낯선 외래어가 열 배는 더 큰 장애물인 것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최대난제는 외래어다. “한국에서 쓰이는 외래어는 최소한 수천 개 이상으로 너무 많다. 영어가 낯선 북한이탈주민에게는 너무나 곤욕스러운 일”이라고 토로한다. “우리말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음에도, 영어로 말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현상이다.” 옳은 말이다.
“옷 사러 가면 ‘흰 셔츠’라고 간단히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도 ‘화이트컬러 셔츠’라고 복잡하게 이야기한다. 동네에 나가면 세탁소라고 쓰여있는 간판 대신에 ‘컴퓨터클리닝’이나 ‘드라이클리닝’같은 외래어 간판들만 많다”고 두리번거린다.
1948년 서울사범대 이기인 교수(납북)가 엮은 ‘새 사리갈말 말광’(생물학술용어사전)은 식물을 묻사리, 동물 옮사리, 청신경 듣느끼, 마취제 얼떨약, 보호색 강굼빛, 저온 얕따수, 음문 암부끄리, 밀도 빽빽가리, 전자 번개티, 색소 빛감, 이런 식으로 풀었다.
이 교수는 특히 ‘모아된 말’(합성어)의 한글화에 주력했다. “딴 나라 말로 얽어 만들어진 말이면 제 나랏말을 배우는 사람이 제 나랏글보다 먼저 딴 나랏글을 배워야 하므로 이런 말은 특수사회의 전용이 되거나 일반 나랏사람이 배우고 쓰기에 큰 곤란과 고통을 주기 때문”이라는 판단에서다. 맞다.
물크림(로션), 입술연지(립스틱), 살결물(스킨), 분크림(파운데이션), 문지기(골키퍼), 헹굼비누(린스), 원주필(볼펜), 가슴띠·젖싸개(브래지어), 과일단물(시럽), 섞음술(칵테일), 접속두·꽂개(플러그), 조향륜(핸들), 가시대(싱크대), 댕기체조(리본체조), 방송원(아나운서), 벌차기(프리킥), 손기척(노크), 조약대(점프대), 주패(트럼프), 직승기(헬리콥터), 고기순대(소시지) 따위의 북한말이 오염되지 않은 우리말일 수도 있다.
북에서 전구는 ‘불알’, 샹들리에는 ‘떼불알’이라고 한다는 것은 헛소리다. 이런 거짓말을 하면서 시시덕거리는 심리의 기저에는 부러움이 자리잡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한글은 사랑해야 마땅한 것이므로.
문화부장 rea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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